비상금 통장 만들기 루틴

AHN

마음의 여유는 숫자에서 시작된다

예전의 저는 ‘비상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매달 월급은 카드값과 고정비로 빠져나가고, 남는 돈은 결국 ‘남은 대로’ 썼죠. 그러다 갑작스런 병원비, 경조사, 급한 수리비 같은 예상치 못한 지출 앞에서 무너지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비상금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습니다.

그 이후 저는 비상금 통장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제가 비상금 통장을 어떻게 시작했고, 어떻게 루틴화했으며, 그것이 삶을 얼마나 안정시켜줬는지를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1. 비상금은 ‘있는 사람’만 드는 개념이라 생각했다

과거의 저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비상금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 드는 생각 아니야?”

그땐 여유가 생기면 저축을 하고, 그 중 일부가 비상금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정작 여유는 절대 먼저 생기지 않더라고요. 늘 ‘이번 달만 넘기자’라는 생각으로 버티다 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여유가 생겨야 비상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비상금을 만들기 위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2. 비상금 통장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 ‘심리적 안전망’

제가 비상금 통장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실제로 필요했던 병원비 때문이 아니었어요. 진짜 이유는 “내가 당황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준비가 있구나”라는 안도감이었습니다.

그 통장에 처음 들어간 금액은 3만 원이었어요. 작죠. 하지만 그 돈이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나한테도 대비라는 게 있다”는 감정적 안정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비상금은 금액보다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한 자산입니다.


3. 비상금 통장은 ‘따로, 멀리, 어렵게’가 원칙이다

비상금 통장을 만들 땐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① 따로: 기존 급여통장과 분리된 별도 계좌 개설 ② 멀리: 타 은행으로 개설, 메인 앱과 연동하지 않음 ③ 어렵게: 이체가 귀찮을 정도로 불편한 구조로 설정

이렇게 만든 통장은 쉽게 들여다보지도 않고, 쉽게 빼지도 않게 됩니다. 심리적 거리 확보가 핵심이에요. 이건 단순한 귀찮음이 아니라, ‘보호막’이 됩니다.


4. 자동이체로 ‘작은 성공’을 쌓는다

비상금은 한 번에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매주 금요일마다 5,000원을 자동이체로 설정했습니다. 월 2만 원, 1년이면 24만 원. 작지만 확실한 안전망이죠.

또한 매달 월급날마다 ‘잔돈 저축’도 추가했습니다:

  • 급여: 2,374,000원
  • 생활비: 2,200,000원 사용 예정
  • 남는 17,000원 → 비상금 통장으로 이체

이렇게 생긴 구조는 ‘있을 때 넣고, 없을 땐 안 넣는다’가 아니라, 무조건 루틴으로 들어가는 흐름을 만들어줍니다.


5. 비상금의 용도는 정해두면 훨씬 단단해진다

비상금은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 쓰일 것인지 ‘기준’을 세워두는 게 더 중요합니다.

저는 비상금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 병원비 (예상치 못한 검사나 약값)
  • 경조사 (갑작스러운 부고나 행사 참석비)
  • 갑작스러운 집수리나 고장 (배수구, 형광등 등)

그리고 그 외의 사용은 금지했어요. 이 원칙이 있으니, 다른 유혹이 와도 쉽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이건 단순한 ‘통장’이 아니라, 내 삶의 긴급 대응 시스템인 셈입니다.


6. 비상금은 자존감의 쿠션이 된다

한 번은 병원 진료 후 예상 외의 검사 비용으로 7만 원이 필요했어요. 그때 비상금 통장에서 꺼내 썼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 순간 느꼈어요. 이 돈은 내가 나를 지키는 쿠션이구나.

누군가에게 5만 원이란 금액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지만, ‘이 정도는 내가 해결할 수 있어’라는 경험이 주는 자존감은 절대 작지 않더라고요.


마무리하며

비상금은 금액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예기치 못한 상황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지금 당장 여유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3천 원, 5천 원부터 시작해도 충분해요. 중요한 건 ‘비상금을 만들겠다는 결정’ 자체가 당신을 한 단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이에요.

오늘도 저는 금요일 아침, 5,000원이 이체됐다는 알림을 받으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작은 금액이지만, 나는 지금도 나를 지키고 있다.”

✉️ 문의: bredleypit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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