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으로 돌려막기 했던 시절 현실은 리스크의 연속이었다

AHN

신용카드 결제일은 다가오고, 통장 잔고는 텅 비어 있고.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음 달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손을 뻗었던 게 바로 상품권 할부 돌려막기였습니다.

이 글은 제가 실제로 신용카드로 백화점 상품권을 구매하고, 그것을 현금화해서 카드값을 갚던 시절의 경험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겉보기엔 그럴싸한 방법 같지만, 직접 해보니 리스크는 생각보다 크고 무서웠습니다. 돌려막기는 진짜 위험한 ‘습관성 위기 구조’였어요.


1. 시작은 “이번 달만”이라는 말에서

처음엔 정말 단순했어요. 신용카드 할부로 상품권을 100만 원치 구매하고, 그걸 현금으로 바꿔서 카드값을 메우는 구조. 수수료는 약 7~10% 수준이었고, 빠르게 현금이 들어오니 일단 급한 불은 껐습니다.

“다음 달엔 일 더 하면 되지.” “한두 번은 괜찮겠지.”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반복하게 됐죠. 처음엔 100만 원, 그다음은 200만 원, 어느새 300만 원 이상까지 상품권 결제가 누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카드값 → 상품권 구매 → 현금화 → 카드값 갚기의 구조. 언뜻 보면 문제없어 보였지만, 그건 겉보기일 뿐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심리적 의존성이었어요. 한 달의 위기를 다음 달로 미루는 습관은 생각보다 빨리 중독이 됩니다.


2. 숨기는 건 쉽지만, 회복은 어렵다

상품권 현금화는 법적으로 완전히 금지된 건 아니지만, 카드사 입장에서는 비정상적인 결제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특히 특정 시점에 백화점 상품권만 집중적으로 구매한 기록이 반복되면,

  • 카드 한도 축소
  • 카드 정지 또는 해지
  • 신용평가사 등급 하락
  • 금융사 대출 불이익

이런 불이익이 현실로 닥쳐올 수 있어요. 저도 한 번은 카드사에서 직접 전화가 왔고, “상품권 구매 목적을 소명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내가 위험한 경로에 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특히 그 통화 이후 카드사 앱에서는 ‘이상거래 탐지 알림’이 뜨기 시작했고, 신규 카드 발급은 연이어 거절당했어요. 평소 같았으면 문제없던 금융 서비스들도, 돌려막기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3. 할부 이자 + 수수료 = 나도 모르게 지출 증가

처음엔 눈에 안 보이지만, 할부 결제는 결국 이자가 붙습니다. 상품권 현금화 업체는 또 수수료를 떼어갑니다.

예를 들어, 100만 원짜리 상품권을 3개월 할부로 결제하고 현금화하면:

  • 수수료 약 10만 원
  • 할부 이자 약 1~2만 원 (카드사에 따라 다름)
  • 손에 들어오는 건 약 88만 원

그 돈으로 카드값 100만 원을 막는다? 불가능합니다. 결국 다시 카드로 무언가를 결제하거나, 다른 카드로 돌리는 ‘무한 돌려막기 루프’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이미 재정 계획이 아니라 갚기 위한 소비가 반복되는 악순환에 진입한 상태입니다. 결국 저는 카드 한도 초과, 현금 서비스 사용, 카드론 연장까지 경험하게 됐고, 그땐 이미 ‘빠져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4.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9개월

이 구조에서 빠져나오기로 마음먹고 나서, 저는 가장 먼저 모든 카드의 한도를 줄이고, 상품권 구매를 중단했습니다. 대신 수입 구조를 바꾸기 위해 투잡을 시작했고, 고정 수입이 생길 때까지는 카드 사용을 아예 중단했어요.

가장 큰 도움이 됐던 건 매달 지출 내역을 엑셀로 기록하고, 할부 상환 스케줄을 시각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총 9개월 만에 할부 잔액을 모두 정리했고, 다시 카드 한도가 회복되기까지는 약 1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신용점수도 일부 떨어졌고, 신규 카드 발급도 거절된 경험이 있습니다. 돌려막기를 할 때는 몰랐지만, 회복 과정은 길고 지치는 여정이었어요.

특히 ‘이 정도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매달 상품권 구매 금액은 늘어나고 있었고, 결국 5개 카드사에서 각각 다른 결제일을 기준으로 상품권 할부 상환이 계속 겹치면서 한 달에 90만 원 이상을 ‘고정 지출’로 써야 했습니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지는 순간, 금융 시스템은 무너집니다.


마무리하며

상품권 돌려막기는 위기의 순간엔 현실적인 선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선택은 잠시 숨을 돌리는 대가로 더 큰 불안을 떠안는 구조입니다.

가장 무서운 건, 처음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구조가 나중엔 ‘없어선 안 되는 습관’처럼 자리 잡게 된다는 점이에요. 나중엔 스스로도 ‘내가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소비가 아닌 생존의 수단이 돼 있었습니다.

지금 혹시 그런 유혹 앞에 계시다면, 꼭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필요한 건 상품권이 아니라 재정 습관을 바꾸는 구조적인 계획일지도 모릅니다. 단기적인 숨통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전이 결국 우리에게 더 큰 힘이 됩니다.

✉️ 문의: bredleypit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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